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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개월 만에 정산을 받은 아이돌 그룹이 있습니다. K팝 역사에서 비공식적으로 가장 빠른 기록이라고 알려진 뉴진스 이야기입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녀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된 무언가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뷔 전략: 티저 없이 정면 돌파
K팝 마케팅에는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티저(Teaser) 전략입니다. 여기서 티저란 본 콘텐츠를 공개하기 전 짧은 예고 영상이나 이미지를 조금씩 흘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데뷔 전부터 "언제 나오지?" 하는 기대감을 쌓아가는 것이죠. 제가 아이돌 씬을 지켜보면서 이 공식이 당연한 거라고 너무 오래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진스는 이 공식을 아예 무시했습니다. 티저 없이 멤버와 음악을 그냥 공개해버린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아이디어가 당시 중학생이었던 막내 혜인에게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어도어(ADOR)의 대표 민희진은 14살 멤버의 의견을 과감하게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뭔가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콘텐츠가 오히려 더 강렬하게 꽂힐 때가 있습니다. 뉴진스의 데뷔가 딱 그랬습니다. 예고 없이 등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함이 배가됐고, 선입견 없이 음악 자체로 먼저 대중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도어는 하이브(HYBE)라는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레이블입니다. 하이브는 BTS를 탄생시킨 회사로, 그 자본력과 인프라는 이미 검증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민희진은 기존 방식에 기대지 않고 전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데뷔 후 불과 3개월 만에 100개가 넘는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그 선택이 얼마나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는지를 수치로 보여줍니다.
- 티저 없는 즉시 공개로 선입견 차단, 음악으로 직접 승부
- 막내 혜인의 아이디어를 민희진이 실제로 채택한 수평적 기획 문화
- 데뷔 3개월 내 광고 제안 100건 이상, 데뷔 2개월 만에 정산 완료
- 하이브의 인프라를 등에 업고도 기존 K팝 공식을 의도적으로 탈피
퓨어 이미지: 세계관을 지운 자리에 남은 것
민희진의 이름 앞에는 항상 '세계관 설계자'라는 수식이 붙어 다닙니다. SM엔터테인먼트 시절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f(x), NCT 등 거의 모든 주요 아티스트의 콘셉트와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온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뉴진스에서는 그 특기를 일부러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처음 뉴진스를 봤을 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희진치고는 너무 심심한 거 아닌가?' 독특한 콘셉트도, 복잡한 세계관도 없었습니다. 그냥 재능 있는 다섯 명이 카메라 앞에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오히려 정답이었습니다.
K팝 아이돌에게는 언젠가부터 작사, 작곡, 퍼포먼스 창작까지 요구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이를 업계 용어로 아티스트 자립성(Artist Autonomy)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아티스트 자립성이란 가수가 창작 전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품의 진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지드래곤의 영향이 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어느 순간 "못하면 반쪽짜리"라는 이상한 기준으로 변질됐다는 점입니다.
민희진은 그 기준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작곡가 250과 프랭크에게 곡을 맡기고,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데 집중하게 했습니다. 전문 작곡가가 만든 음악, 세계관 없이 맑고 깨끗하게 제시된 다섯 명의 얼굴. 그 조합이 대중에게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퓨어(Pure) 이미지야말로 뉴진스가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전략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영국의 음악 평론 웹진 musicOMH는 뉴진스의 미니앨범에 5점 만점을 부여했고,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매체인 Pitchfork는 7.6점을 매겼습니다. 이는 K팝 앨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입니다. 세계관 없이도 세계를 설득한 셈입니다.
음악 정체성: 장르 실험과 뮤직비디오가 쌓은 세계
뉴진스가 데뷔 반년 만에 발표한 겨울 미니앨범에는 볼티모어 클럽(Baltimore Club)이라는 장르가 담겨 있었습니다. 볼티모어 클럽이란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발전한 빠른 박자의 하우스 기반 전자 음악 장르로, 드레이크나 릴 우지 버트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즐겨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에서 10대 걸그룹이 이 장르를 시도한다는 건 그 당시만 해도 꽤 낯선 그림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팬덤인 버니즈(Bunnies)와의 이별을 주제로 했습니다. 데뷔한 지 반년밖에 안 된 그룹이 팬과의 이별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K팝 역사에서 이런 시도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우석 감독은 "아이돌과 팬의 관계도 언젠가 끝이 난다"는 걸 대놓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고, 그 솔직함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ETA의 뮤직비디오입니다. 전문 촬영 장비 없이 일반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상인데, 그 기동성과 날것의 질감이 곡의 분위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작사에는 래퍼 빈지노가 참여해 가사를 뜯어보고 싶게 만드는 효과도 생겼습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쿨 위드 유(Cool With You)는 월드스타 정호연과 배우 양조위가 출연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뮤직비디오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입 보이(Hype Boy)의 밈(Meme) 열풍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밈이란 인터넷에서 특정 포맷이나 표현이 변형·확산되는 문화 현상을 말합니다. 하입 보이는 약 1년 가까이 밈으로 유행하면서 발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차트 1위를 기록하는 이례적인 역주행을 이뤄냈습니다. 음악의 완성도가 입소문의 연료가 됐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뉴진스는 왜 리더가 없나요?
A. 민희진 대표가 역할에 얽매이지 말라는 취지로 리더 직책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인 댄서, 메인 보컬 같은 포지션 구분도 따로 없습니다. 다만 누가 봐도 큰 어른 역할을 하는 멤버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Q. 뉴진스 팀명이 청바지에서 온 게 맞나요?
A. 맞습니다.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 청바지처럼 대중에게 질리지 않는 새로운 아이콘이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유전자(New Genes)'라는 중의적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민희진의 '진'에서 따온 거 아니냐는 소문은 사실 무근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Q. 뉴진스 데뷔 2개월 만에 정산받은 게 왜 특별한가요?
A. K팝 업계에서 아이돌 그룹이 데뷔 초반 정산을 받기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립니다. 초기 제작비, 트레이닝 비용, 프로모션 비용 등을 먼저 회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뉴진스는 데뷔 후 약 2개월 만에 정산을 받았다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직접 밝혔으며, 이는 비공식적으로 K팝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뉴진스 음악은 누가 만드나요?
A. 주로 외부 전문 작곡가인 250과 프랭크가 곡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중적인 메인스트림보다는 독창적인 성향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신선함이 오히려 뉴진스 특유의 음악 색깔로 자리 잡았습니다. ETA의 경우 래퍼 빈지노가 작사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론
뉴진스는 지금 긴 공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도어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졌을지,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합니다. 그냥 아쉽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 건, 뉴진스의 성공은 운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티저 없는 데뷔, 세계관 대신 퓨어 이미지, 장르 실험과 뮤직비디오의 완성도. 이 세 가지가 정확히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결과였습니다. 민 대표의 말처럼 "대중에게 먹힐 거다"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수치로 증명됐습니다.
그녀들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의 선택이 멤버들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팬과 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뉴진스가 다시 무대에 섰을 때 어떤 모습일지, 그날이 오면 다시 또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